베트남식 비빔밥, 껌엄푸 Com am phu

 

베트남의 중부 후에 지방은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궁전, 왕릉들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이곳저곳 다니느라 굶주린 당신의 배를 채워줄 후에의 명물 ‘껌엄푸’를 소개한다. 예전에는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음식이었지만 요즘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소개가 되면서 입소문을 타며 재조명되고 있다. 다양한 식재료들이 밥 주위를 둘러 가지런히 한 접시에 담긴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기 시작한다.

 

 

고단한 후에 지방 노동자들의 안식처
껌엄푸는 후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음식이다. 1914년 프랑스 식민시절 후에 지방에서 ‘엄푸(Âm Phủ)’라는 간판을 달고 손님을 받기 시작한 것을 원조로 보고 있다. 원조 껌엄푸 음식점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한 작은 밥집으로 시작하였는데, 인근의 건설작업에 동원된 힘없고 가난한 인부들의 대다수는 싸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껌엄푸 음식점에서 생활을 이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저녁이 되면 껌엄푸 음식점은 힘든 일과를 마치고 검게 그을려 온 인부들로 가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껌엄푸 음식점 주변은 관료들과 프랑스 군인 등 부유한 사람들의 활동거점이 되었던 고급식당, 음식점이 즐비했다고 하니 공사장 인부들이 느꼈을 빈부와 신분의 격차, 가난에 대한 고통은 더 컸으며 껌엄푸 음식점은 곧 이들의 허기진 마음을 달래는 아지트가 되어갔다.

원조 껌엄푸 주소: 51 Nguyen Thai Hoc, Xuan Phu, Hue

 

 

지친 밤손님을 위한 “껌엄푸”와 작은 호롱불
80년 역사의 껌엄푸 음식점의 초창기 손님은 주로 밤손님이었다. 낮에 팔고 남은 음식들을 이것저것 모아 밥과 함께 대충 한접시에 담아서 내 놓았다. 마치 1950년대 한국에서 먹다남은 식재료로 만들었다던 부대찌개와 의미가 일치한다. 최초의 식당은 후에 지방의 공설운동장 맞은편 깊숙한 골목에 위치한 곳으로 매일 밤마다 손님들을 받기 위해 호롱불로 가게 앞을 밝혀놓았다. 처음에는 밥을 의미하는 “껌(Cơm)”과 밤 시간대를 나타내는 “져 엄(giờ âm)”이 합쳐져 “Cơm âm”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나 이후에는 밤손님들의 노동에 지치고 허기진 얼굴들이 호롱불에 비친 모습을 보며 지옥의 한 장면 같다고 여겨져 지옥이란 뜻의 “엄푸(âm phủ)”로 불리게 되었다. 지옥의 밥 “껌엄푸”는 지옥 같은 인생에서 작은 호롱불이 되어준다는 의미로 세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무재칠시, 7가지  나눔의  미학
이 “껌엄푸”가 “지옥 밥”이라는 뜻을 알았을 때 한번 놀라고, 음식을 보고 한번 더 놀라게 된다. 다채롭고 향긋한 반찬들이 밥 옆에 가지런히 놓여 나오는 모습이 베트남 중부지방 후에 음식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베트남 음식 전문가에 따르면 껌엄푸에는 7가지 색상이 들어가고 이것은 무재칠시(無財七施, 7가지 돈이 들지 않는 나눔 – 미소, 칭찬, 예의, 양보, 사랑, 격려, 용서) 정신을 담고 있다고 전해진다. 잘게 썰린 삼겹살, 짜르어(Chả lụa)라고 불리는 저민 돼지고기, 말린 새우, 계란 지단, 향채와 초록 채소, 오이, 당근이 밥 주위에 장식된다. 이 한 접시의 음식에 담긴 7가지 반찬들은 한 끼 식사로 충분한 영양을 선사한다. 껌엄푸를 만들기는 어렵지 않지만 만드는 이의 정성과 섬세함이 그 맛을 좌우한다. 각각의 재료 선정에서부터 하나하나 다듬어내는 섬세함까지 손이 많이 간다. 팔고 남은 재료를 모아 만들던 시대에서 세월이 흘러 이제는 푸짐한 영양만점 음식이 되었다.

 

 

호치민 가오 레스토랑의 껌엄푸

필자가 방문한 호치민의 Gao 레스토랑은 7가지의 재료이긴 하나, 고기 종류만 네 종류로 푸짐하게 차려졌다. 늑맘 소스를 뿌려 비비니 맛은 흡사 껌승(Cơm sườn)과 비슷했다. 베트남에서 한 그릇에 이토록 많은 재료가 담기는 음식은 처음이었지만 채소와 피클이 어우러져 속이 든든했다. 음식 이름의 뜻 그대로 지치고 허기진 지옥 같은 현실에서 정성과 따스함이 느껴지는 건강한 한 끼였다. 

가오레스토랑 주소:  33 Le Quy Don, Ward. 6, Dist. 3, H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