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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인력자전거, 씨클로의 역사

심심푸리 2019. 3. 16. 19:00

 

문 없이 편안한 등받이 좌석에 손님을 모시는 운송수단으로 태국과 캄보디아에는 툭툭, 필리핀에는 하발하발 그리고 베트남에는 “씨클로(Xích Lô)” 가 있다. 씨클로는 운송수단이자 베트남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상징성을 함께 지니고 있는데 슬프게도 세상이 발전하며 택시나 버스 같은 신종 운송수단으로 씨클로는 이제 문화적 가치만 남게 되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 고요한 추억을 선사하는 씨클로, 오늘은 씨클로를 담아보았다.

 

 

 

씨클로의 기원 - 마차와 인력거
19세기 1880년에 처음 시작된 씨클로의 기원을 살펴보자. 프랑스 식민지였던 당시 19세기 베트남은 마차가 일반적인 운송수단이었다. 주 고객층이 서민인, 한 마리의 말로 운행하는 마차와, 프랑스인들이 도입한 말이 두 마리인 쌍마 고급마차가 주요 운송 수단이었다.
1883년에 이르러 북부 베트남에 말대신 사람이 직접 끄는 인력거가 탄생하였다. 프랑스 총독인 진 토마스(Jean Thomas)에 의해 일본의 인력거 방식이 하노이에 처음 도입되었다. 한 사람의 인력거꾼이 두개의 바퀴가 달린 의자를 끄는 형태였고, 초기의 인력거 의자는 쇠로된 뼈대, 고급원목과 푹신한 쿠션으로 인력거꾼에겐 상당히 무거운 편이었다. 부녀자들도 이 무거운 인력거를 끌었다고 하니 힘들었던 시대상황이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또한, 이 시대 재력가들은 인력거꾼과 인력거를 한두대씩 사유하며 재력을 과시하였다고 한다.

 

 


씨클로의 발명 - “쿠포”의 200km 여정
1939년, 인력거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쿠포(Coupeaud)라는 프랑스 체육인에 의해 자전거와 인력거를 결합한 씨클로(Cyclo)가 탄생하였다. 처음 쿠포가 이것을 발명한 것은 베트남이 아니고 프랑스였으며, 프랑스에서는 유명세를 타지 못했다. 처음 씨클로가 운송수단으로 널리 인정받게 된 것은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이었다고 한다. 쿠포는 당시 인기가 없던 씨클로를 광고하기 위해, 프놈펜에서 호치민까지 200km 거리를 한명의 동반자와 함께 하나의 씨클로를 번갈아 운행하며 17시간 23분만에 주파하였다. 그의 노력 덕분에 1939년도 말에는 호치민에 정식으로 40대의 씨클로가 보급되었고, 1940년에는 400대, 1942년 2월에는 프랑스인 모리스(Maurice)에 의해 호치민 6군 쩌런 시장을 독점하는 씨클로 운행회사인 “바이 비엔(Bảy Viễn)”이 설립되었다. 1942년 이후, Cyclo는 베트남식 명칭으로 “Xích Lô”라 불리며 전국 각지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씨클로의 구조
씨클로는 세바퀴로 이루어져 있는데 2개의 좌석 바퀴와 운전석 바퀴 1개로 운행되는 구조이다. 손님과 운행자의 무게가 골고루 분배되어 좌우로의 방향전환이 쉽다. 손님이 앉는 좌석이 앞, 운행자가 뒤에서 동력을 전달하는 역삼각 구조(세발자전거의 반대)이다. 기존의 인력거, 마차보다 훨씬 용이하게 짐을 운반하거나 손님을 태우고 다니며 유유자적히 거리를 누빈다. 손님이 앉는 좌석은 비와 햇볕을 가릴 수 있게 차양막까지 설치해 놓은 배려까지 엿볼 수 있다.

 

 

 

고요한 단순미, “씨클로”
씨클로는 화려하지 않고 단순한 모습으로 소설가, 시인,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예술분야의 소재가 되었다. 자동차, 오토바이들의 소음을 내며 도로를 달리는 것에 비해 씨클로는 조용히, 공해도 없이 편안하고 유유자적하게 길을 누빈다. 세계에 알려진 베트남의 인상적인 모습 중 하나로 씨클로 풍경이 꼽히는데, 특히 프랑스와 스위스를 비롯한 서유럽의 씨클로 관광객들이 많다고 한다.

 

 

40년 씨클로 장인
호치민 5군, 쩐푸(Trần Phú)거리에는 사우팟(Sáu Phát) 씨클로 장인이 있다. 씨클로가 탄생한지 80년, 장인은 2대째 가업을 이어받아 40년째 씨클로를 수리하고 있다. 장인에 의해 씨클로는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장인은 고전방식의 무거운 쇠로 만든 씨클로와는 달리 스테인리스로 뼈대를 만들고 게다가 엔진까지 부착된 신식 씨클로를 개발하였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고전 씨클로를 제작하는데 천만동, 신식은 약 3천만 동까지 가격을 측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미래가 그리 밝진 않다. 예전보다 훨씬 적은 수요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데, 20년 전만해도 5명의 수제자를 두고 씨클로 수리법을 전수하였으나, 이제는 크게 수입이 되지 않아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홀로 꿋꿋이 남아 수리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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